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무로 레이/기동전사 건담 (문단 편집) == 캐릭터로서의 아무로 레이 == 이제는 전설적인 작품의 주인공으로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하는 아무로 레이이지만 위의 설명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아무로 역시 처음에는 설정 면에서 그전의 슈퍼로봇물의 주인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군인이 아닌 민간인 소년, 부친이 거대인간형병기의 개발자, 뛰어난 조종실력 등. 하지만 이런 그가 다른 슈퍼로봇물의 주인공들과 차이점을 갖게된 것은 끊임없이 아버지로 대표되는 가부장질서 내에서 인정받고 완성되는 방식을 거부한 내러티브 구조에서 기인한 것이다. 7,80년대의 일본 애니메이션 중 소년 지향적인 액션물에서 그 세계관 내의 질서는 대부분이 가부장적이었다. 플롯을 이끄는 주된 원인이 아버지로부터 이어진 혈통이었던 것이다. 아버지에게 새로운 몸을 받아 그 것으로 정의를 행한다는 것이 소재와 주제에 상관없이 공통적으로 저변에 존재했었다. 따라서 과학자인 아버지가 멋진 새로운 몸을 주던가[* 당장 [[토미노 요시유키]]의 다른 작품인 [[무적강인 다이탄3]]의 [[하란 반죠]]가 그랬다.], 아니면 새 몸을 준 과학자가 아버지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래서 이 시기의 과학자 캐릭터는 실질적인 지도자, 지휘관이었다. 반면 건담은 시작은 비슷했으나 주인공을 지배하는 세계관의 문법이 달랐다. 예컨대 민간인 소년이기 때문에 전쟁에 휩쓸릴 필요가 없었고, 내향적인 성격이었기 때문에 신경질적으로 행동하는 점, 개발자인 아버지는 일찌감치 산소부족증으로 폐인이 되어 MS 조종, 기술, 정비까지 도와주는 사람 없이 혼자서 주먹구구식으로 독학해가며 성장해야했다는 점, 그를 보듬고 이끌어나가야 하는 브라이트 노아는 이전의 박사형 캐릭터와는 전혀 다른 일개 사관후보생이었으며 심지어 지휘자로서도 초반부엔 그 자신 또한 미성숙해서 갈등을 자주 겪곤 했다.[* 이후 아무로와 브라이트와 절친한 전우의 위치가 된걸 생각하면 박사형과는 다른 위치란걸 알수 있다.][* 아무로 뿐만 아니라 브라이트도 아무로만큼은 아니지만 이야기의 주역중 하나로서 또 하나의 주인공과 같은 위치에 성장을 겪었단것만 보더라도 특별하다.][* 노안 때문에 간과하기 쉽지만 이 당시 브라이트의 나이는 고작 '''19살'''. 그리고 말이야 사관생도지 군 생활을 화이트 베이스와 함께 시작했기 때문에 군 짬밥만 따지고보면 민간인 소년 주제에 급하게 정규군 취급으로 계급을 달게된 아무로와 별반 다를 것도 없다. 19살의 나이로는 전란 속에서 크루들을 이끌고 강습상륙함의 함장 노릇을 하기도 벅찬 판에 4살 어린 동생의 사춘기적 신경질까지 받아주기에는 그 역시 미숙하고 어린 청년에 불과했다. 그나마 아무로와 치고받고 싸운 끝에 싹튼 동질감과 아무로가 정을 나눈 사람들의 죽음으로 자제심을 배운 이후로는 사적으로는 꽤나 살가운 사이로까지 발전했다.] 그리고 아군이 아니라 적군과의 교류에서도 그가 성장을 거듭해나갔다는 점[* 람바 랄과의 전투, 라라아를 두고서 싸워야 했던 샤아 아즈나블과의 악연 등]에서 기존의 슈퍼로봇의 열혈하고 정의로운 주인공들과는 다른 유형의 개인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캐릭터성을 확립하게 된 것이다. 이는 과거의 주인공들이 가졌던 '정의'에 대한 욕망이 거세되어있다는 점으로 확실히 드러난다. 과거의 주인공들은 무엇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는 개념을 처음부터 지니고 있거나 작 중반에 가지게 되어 캐릭터로서 완성된다. 그래서 그 이후는 열심히 적을 무찌르는 모습이 주된 묘사의 대상이다. 허나 아무로 레이는 끝까지 그 캐릭터에게 지키고자 하는 바를 뺏어가는 방식으로 극이 진행된다. 그래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극에서 퇴장하는 시퀀스가 중요해지는 것이고, 그것을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라라아와의 교감에서 말해지는 '돌아갈 집도 없는, 사랑하는 이도, 지킬 이도 없는' 상태인 것이다. 이 욕망이 거세되어 '단지 전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살아가는 상태'는 극중 다른 등장인물에 대비되어 더 확연히 드러난다. 극중 가장 작은 역인 적군의 파일럿도 죽을 때 어머니를 외칠 정도로 사랑하고 지키려는 사람이 명확하며, 화이트베이스의 크루도 전쟁 후의 자기 자신의 미래를 약속하고 말한다. 소심한 콜로니의 관리자도 전 약혼자를 위해 눈물을 흘리고, 군인은 이미 죽어버린 약혼자의 결과물을 지키기 위해 흔쾌히 목숨을 내놓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로와 대비되기 위한 캐릭터인 아치에너미, 라이벌 [[샤아 아즈나블]]은 [[지온 줌 다이쿤|아버지가 남긴 뜻]], [[라라아 슨|연인]], [[세일러 마스(기동전사 건담)|여동생]], 복수 등 지키고 성취해야 할 목표가 많은, 욕망의 집약체이다. 샤아 아즈나블은 70년대식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격인 인물인 것이다. 따라서 극의 후반에 이르면 아무로는 화이트베이스의 삶에 대한 욕망을 받아들이는 존재가 된다. 아무것도 확답해 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이길거라고 말하고 만다. 그리고 그것은 콕피트 내에서 온전히 자신의 몫으로만 남는 것이다. 이는 다른 사람의 불안을 안겠다는 방식이 아니라 단지 귀찮은 커뮤니케이션을 제거하겠다는 의미가 크다. 가장 원초적인 생명에 대한 욕망과 그에 대한 불안을 어떻게든 주위와의 관계 내에서라도 해소하려는 화이트베이스의 크루들과 달리 철저히 그 불안과 고통을 온전히 혼자서만 감내하는 존재가 된다. 그만큼 아무로는 완전히 고립되어 단지 자신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캐릭터성을 강화하게 된다. 여기서 라라아의 캐릭터는 전혀 이해받지 못하던 존재가 완전한 이해를 받게 되는 상황을 만들어준다. 세상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를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그 찰나의 행복한 순간을 스스로 제거하게 만듦으로서 캐릭터에게 더 큰 내적 시련을 가지게 만든다. 라라아를 위한 복수인 것처럼 보이는 마지막 전투에서 샤아를 죽이는 것을 실패한 후 아무로는 능력을 타인을 위해 쓸 수 있다고 하는 라라아의 말을 듣게 된다. 이는 극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능력을 온전히 주위 사람을 위해서 쓰게 되는 장면이다. 이를 통해 주위 사람의 소중함을 느끼고 갈등을 극복하게 된다. 결국 아무로의 극중 캐릭터는 돌아갈 집도, 지켜야 할 사람도 없던 아무로가 극의 최후반에서 삶의 기로에 '화이트 베이스의 크루들'이라는 돌아갈 곳을 인식하게 되고, 이들을 지켜야 할 것으로 삼아 뉴타입의 능력으로 구해냄으로서 작중 내내 찾을 수 없었던 삶의 의미를 찾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